사람들 중 상당수는 과거에 연연한다.

상대방에게 차인 연애에서는 "그 때 내가 그런 소리만 안했어도..."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고, 고스톱에서 쓰리고까지 불렀다 독박을 쓰면 "내가 흔들지만 않았어도~" 하고 후회하기도 하고, 중소기업에서 수당없이 주말 야근하고 있을라면 "이럴 줄 알았으면 학생 때 공부 열심히 할껄"하면서 자조하기도 한다.

일본사람들 중 일부는 2차대전에 대해서도 이렇게 죽은 자식 XX만지기를 하면서 위안을 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최신예 이지스함을 타임슬립 시켜서 태평양 한 복판에 떨궈 놓는 만화까지 등장했는데 그 제목이 바로 '지팡구(Zipangu)'. 2004년에 애니메이션화 되었다.

'침묵의 함대'라는 작품으로 전 세계가 일본의 잠수함 한 대에 의해 그냥 정신개조 되버린다는 놀라운(!!) 세계관을 보여준 가와구치 카이지의 최근작이다. 지팡구는 마르코폴로가 옛날 일본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그냥 뜻 몰라도 그만인 제목.

이런 작가가 똘추스럽게 "이 쉑키들 니넨 다 죽었어!!" 스타일로 만화를 그리면 그나마 콧방귀만 뀌고 그만일텐데(사실 이현세의 '남벌'이 이런 스타일이라 생각됨) 불행하게도 이 작자는 교묘하게 자신의 사상을 위장해 버린다. 침묵의 함대에서도 핵잠수함으로 독자적 군사행동을 하는 가이에다를 집요하게 뒤쫒는 바른 정신의 자위대 후카마치 함장을 집어 넣더니, 지팡구에서는 아예 바지사장도 아니고 바지주인공들을 내세워 놓는다.

극 전개상 자위대의 신조를 생명처럼 지키려고 하는 이지스함 '미라이(未來)' 호의 부함장 카도마츠가 주인공 같지만, 누가 봐도 실질적 주인공은 미라이의 무력을 이용해 초역사적 국가 지팡구로 일본을 갈아 엎으려는 단무지해군 소좌(소령급) 쿠사카 타쿠미가 주인공이다. 그러니 미라이호의 함장과 부함장 및 휘하 대원들은 자위대의 수칙은 과연 올바른 것인가를 끝없이 자기들끼리 물어보며 바지주인공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애니메이션 자체는 꽤 재밌다. SF적 대체역사물로 생각하고 보면 재밌는 줄거리이자 연출도 괜찮은 편이지만 사상적으로는 절대로 감화되거나 동화되어선 안되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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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하늘에서 빛을 비춰주는 지팡구라는 가타카나에서 이미 정체성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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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에 펠링스라... 저거 돌아갈만큼 가까이 접근시킬 일도 없겠지만 그래도 막강화력의 근접무기인 만큼 애니메이션에선 사용장면이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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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서 과거로 간 바지주인공들. 좌로부터 함장, 부함장, 포뢰장(이 둘은 동기인데 항해장도 같은 동기, 물론 이들은 자위대 원칙을 놓고 갈등하기 위해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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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 주인공이자 2차대전을 넘어 세계 최강대국 '지팡구'를 건설하자는 단무지해군 쿠사카 타쿠미 소좌.
만화책에선 손수 만주국의 마지막 황제 부의를 암살하기도 하고 히틀러의 암살도 계획한다. 실존 물리학자 한스 크루거에게 농축 우라늄도 뺏다시피 가져오고... 이 쯤되면 아무리 대체역사물이라 해도 너무 막나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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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불붙은 미라이의 역사 끼어들기 의지. 미해군 전투기를 향해 시스패로우 발사!
프로펠러 비행기를 향해 함대공 유도미사일을 날리는 건 동네 초딩꼬마를 혼내주기 위해 로보트 태권브이가 출동하는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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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로켓이 쫒아다니면서 맞추는 게 어딨어!!!" 미군 당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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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놈 신형 배? 그까이것" 하면서 달려든 미해군 뇌격기 전투기들 공격개시 30초만에 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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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장님, 아예 뱅기들 더 못날리게 미 항모 격침시키고 맙시데이" 하면서 발사된 토마호크 미사일.
한 발에 13억 하는 럭셔리 1회용 무기가 2차대전에 등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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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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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난생 첨 보는 로켓을 보고 벙찐 미 해군 사령관. "이...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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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항모 와스프. 60년 뒤에 만들어진 무기 한 방 맞고 떡실신. 상당수 승무원 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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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인물 츠지 마사노부 단무지육군 중좌(중령). '작전의 신'이 닉네임이라는데, 솔찌키 일본인들은 별것도 아닌데 너무 신을 자주 붙인다. 임요환은 그럼 작전의 초월적 존재가 되야하고 이동국은 터닝슛의 신선으로 불려야 할 듯.
어쨌든 이 작자 쿠사카에게 세뇌당해 과달카날의 철수를 떠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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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인물인진 모르겠지만 과달카날에 상륙한 단무지육군 중좌(대대장 정도의 지위를 가졌을 듯). 혼자서 철수하지 않고 흩어져 남아 있는 부하들을 찾아 다니며 철수작전이 완료되도록 지휘. 과거사 미화를 위한 캐릭터로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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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급 실존인물 등장. 해군장관이자 수상을 지낸 요나이 미츠마사. 미라이의 승무원들을 향해 "너희들의 지식과 기술은 종전 후 일본의 재건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며 일장연설을 하고 있다.



지팡구의 위험한 대사들.

"그래, 예전에 일본인은 이런 남쪽 섬에서도 전쟁을 했었다"
- 부함장 어렸을 때 자위대였던 아버지가. (영광의 과거란 메시지)


"전쟁 때문에 모두들 불행해진거죠?
전쟁하는건 나쁜 일인거죠?"


"싸웠던 사람들은 상대의 목숨을 뺏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을.. 고향을..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거다
목숨을 걸고서..."

- 일본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라... 구마적이 껌 씹다 시라소니에게 뺨 맞는 소리.

"핵은 갖고 있는 것만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궁극의 무기이기 때문에... 한 나라만이 상징적으로 핵무기를 갖고 있어도...(어쩌구 저쩌구)
유일하게 핵을 보유하면서 세계의 평화를 지킬 자격이 있는 나라는 그 피해를 직접 겪은 일본밖에 없소"
- 쿠사카 타쿠미 (이딴 소리를 하니 핵펀치를 맞는다는 걸 왜 모르는지)

우리들이 싸우고, 또 지켜야할 나라는 따로 있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전쟁의 늪에 빠져버린 대일본제국이 아닌..
무조건항복이라는 굴욕에서 시작되는 전후의 일본도 아니야

두개의 시대를 접해본 바, 나의 뇌리에 떠오르는 나라가 있네
바다로 둘러싸여 독립적이고..
힘이 넘치는 그 섬은..
틀림없이 우리들의 눈앞에 존재하네
그것이 '지팡구'다

일찍이 서양의 여행자들이 꿈꾸던 곳..
하지만 현실에선 당신들의 시대가 올때까지, 일본인이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국가다

- 쿠사카 타쿠미, (그니까 네가 얘기하는 지팡구와 일본의 제국주의의 차이점이 간판만 바꿔 불법영업하는 유흥주점하고 다른 게 과연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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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arky

2007/06/25 19:24 2007/06/25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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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리에요 2008/08/13 15:47 # M/D Reply Permalink

    사무실에서 혼자 자장면 시켜먹다 곰티비에 있길레 3화정도 보다가...말았네요.
    거기까지만 봐도 이미 '그들만의 아름다운 경기' 가 아닌가 싶을 느낌을 받긴 했는데.. 그냥 단순한 애니인지 적어도 어떤 작은 의미라도 있는건지 궁금하긴 하네요.
    잠깐 보면서 다른 생각들이 궁금해 검색해서 찾아와봤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1. sharky 2008/08/14 22:20 # M/D Permalink

      예, 그냥 "옛날엔 우리도 미국과 맞장도 뜬 시절이 있었지~" 하는 왜인들을 주타겟으로 삼은 픽션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주 들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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