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예전 속초에서 정말 맛있게 먹었던 '실로암 메밀국수'가 상경하여 음식점을 차렸다는 미확인 정보를 입수하고 찾아가 보았다.
실로암 메밀국수에 대해서는 아주 예전에 쓴 이 글을 참조.
간판의 모양새와 메뉴 구성 등을 보면 그냥 몇몇 식당이 모여 대충 음식타운을 급조한 기색이 역력.

간판이 매우 번잡스런 느낌이 든다. '원조설악'도 그렇고 '김정수 할머니'라는 이름을 내세운 것도 그렇다. 게다가 "전국 체인점 모집"이라는 문구에서 음식을 만드는 자세라기 보단 식당을 기업화 시키려는 의식이 엿보인다.

실로암 메밀국수에 속초나 할머니 이름을 어떻게든 어필을 시키려고 하고 메밀국수를 간판으로 건 집에 보쌈명가라고 따로 간판을 거니 초입부터 좀 꼬인 듯한 느낌이 든다.

속초에서 보았던 사진들이 여기로 옮겨져 와 있다. 실로암 메밀국수와 상관관계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속초에선 사진이 정말 많았는데 좀 적은 듯한 느낌. 자세히 훑어보니 유명한 사람들 위주로 떼어내 온 것 같다.

이회창 총재에 이어 김수환 추기경도.

대한민국 최고의 거부와 전재산이 29만원 밖에 없는 가난뱅이(?)가 한 자리에 모여 있다.

어쨌든 실내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허풍이 좀 지나치게 세다. 솔직히 메밀이 구황작물이지 웰빙 음식이라고 하긴 뭐하지 않는가. 요즘에 와서야 헝그리한 음식들이 고급으로 대접받는 현상이 있긴 하지만, 동치미를 4계절 동안 저온숙성을 시켜가며 발효를 했다는 건 도저히 인정하지 못하겠다.

현란한 배너 사이에 있는 '메밀의 효능'을 읽어보니 가히 포복절도 할만한 내용이다. 메밀이 음식의 차원을 넘은 탁월한 약물이라니 FDA가 깜짝 놀라고 노벨의학상을 수여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뭐 어차피 그게 그거라고 이해할 수는 있는 집이지만 메밀국수를 타이틀로 건 집에서 주문지에는 '막국수'로 표기되어 있다. 게다가 '김할머니 보쌈'이라니... 왜 자꾸 양아치스런 느낌이 드는 지 모르겠다.

아무리 사람들이 찾는다고 해도 메밀국수에 이런 불필요한 화학물질들을 알아서 구비해 놓다니! 정말 4계절 동안 저온숙성을 시켜가며 발효시킨 동치미를 내놓는 주인장이라면 솔직히 자신의 프라이드를 걸고 손님들에게 동치미 국물의 맛을 음미하기를 권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건 거의 앙드레 김이 오리지널 디자인으로 옷을 만든 뒤 고객에게 처음부터 커스텀으로 만들어 입으라고 가위와 누더기 천을 건네주는 격이나 마찬가지이다.

음식을 주문하고 30분 정도가 지나니 기다리는 동안 허기라도 달래라고 보리밥 한 숟가락을 준다. 손님들이 많은 것도 아니고 두 테이블 정도 더 있었으니 식당 운영 시스템에도 문제가 좀 있어 보인다.

열무김치는 평범한 맛. 별다른 불만요소 없다.

저온숙성? 아닙니다. 딱 일주일 이내에 만들어지는 사카린 감미 동치미입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메밀국수가 나왔는데 일견 푸짐해 보이지만 과도한 깨소금의 압박이 상당하다. 속초에서 먹은 비주얼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이것이 속초 오리지널 실로암 메밀국수. 메밀의 함량이나 기타 다른 모든 면에서 안정적이고 자리가 잘 잡혀 보인다.

최대한 기분 좋게 먹으려고 노력은 했는데, 그냥 신장개업한 막국수집이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보인다면 그런대로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는 맛이었지만 도저히 실로암 메밀국수를 표방할 맛은 절대, 네버 아니었다. 그 차이는 동치미 국물 한 숟갈, 메밀국수 한 가락만 입에 넣어봐도 한 번에 알 수 있다.

김정수 할머니의 발자취라고 써 놓은 디스플레이를 보니 대충 짐작이 간다. 결국 이 집에는 김정수라는 할머니는 없다는 얘기이다. 작은 아들이 큰 아들과 뭔가 안좋은 관계에 놓인 것 같은데 작은 아들이 사진 뜯어가지고 부천으로 와 음식점을 차렸다는 이야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아주 낙제점은 아니지만 일단 면에 메밀함량을 높이고 동치미 담그는 것에 훨씬 더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전혀 다른 맛으로 어머니 이름이나 팔아 장사를 하려고 한다면 사람들은 처음엔 호기심으로 한 두 번은 찾아가겠지만 그 발걸음이 실로암 메밀국수처럼 길게 이어지진 결코 않을 것이다.
Posted by shark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