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맥주에 대해 무관심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것 같다. 맥주란 갈증이 날 때 시원하게 목과 몸을 식혀주는 음료에 가깝다고 생각했지 진지하게 맛을 따지며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맥주에 대해선 못배웠다는 얘기인데, 돌이켜보면 맥주를 마시게 된 게 대학 신입생 때 학교 앞 생맥주집에서 끽해야 노가리 두어 마리 앞에 두고 500cc 여섯 잔을 거푸 마셔야 했던 백그라운드가 작용한 듯 하다.
맥주라 하면 1잔이 정량으로, 역설적으로 다양한 맥주의 맛과 풍미를 음미해가며 마실 수 있는 대홍군이 강력 추천한 맥주집이 있어 의기투합해 찾아가 봤다. 상호는 200년 역사의 독일맥주회사 '크롬바커'. 수입업체가 직영한다는 깔끔한 분위기의 맥주집이다. 위치는 뱅뱅사거리 역삼동 카후나빌 뒷편.
결론적으로 비록 한 업체의 맥주만 3종 마셔봤지만 친구들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맛을 보니 확실히 예전과는 다르게 맥주라는 술에 각각의 의미와 깊이가 있다는 걸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크롬바커 맥주집의 잔받침. 이거 하나만 보더라도 이 가게의 자세와 태도가 남다르다는 걸 엿볼 수 있었다. 필스라는 생맥주는 가장 친숙한 맛의 크롬바커 맥주였는데 나오자마자 휘리릭~ 마셔버리느라 사진을 찍을 여유가 없었다.

바이젠이라는 생맥주였는데 하우스맥주집에서 마셨던 맥주와 비슷한 맛과 향이 났다. 살짝 청과물 향이 나는 게 한 잔 앞에 놓고 이런저런 환담을 나누는 데 적합한 맥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술고래가 아닌 여성들도 가볍게 한 잔 마시는데 부담이 없을 듯.

맥주는 따르는 기술 역시 무시할만한 영역이 아닌데 이 집 맥주 기술 괜찮다. 잘잘하게 고운 거품이 오랜시간 표면을 감싸줘 맥주의 탄산이 급격히 빠지는 걸 방지해준다.

약간은 탁한게 밀을 원료로 한 맥주라 그런가 하는 생각도. (아마 별 상관 없겠지만) 밀맥아를 발효시킨 맥주맛도 꽤나 상쾌하구나.

내 기억으론 이게 알트인 것 같은데 필스 잔에 나온 것 같다. 뭐 담는 잔이야 깨끗한 유리잔이라면 맥주맛에 크게 구애를 주진 않는다. 조금은 약한 강도의 흑맥주라고 할 수 있는데 꽤나 구수한 맛이 깊게 나왔다.

이젠 안주 차례. '학센'이라고 독일식 족발요리인데, 이 날은 조금 오래 오븐에 구웠다는 게 중평. 껍질이 꼬드득하게 씹힐 정도인데 먹기 좋게 잘 해체되어 맥주와 꽤나 잘 어울리는 콤비를 이뤘다.

족발의 껍질은 양질의 콜라겐이 듬뿍 들어 있어 몸에 좋다. 물론 맨날 먹으면 좀 그렇겠지만 가끔씩 먹으면 관절과 피부에 자양분을 공급해준다.

피클식으로 양파와 양배추를 절인 것도 족발과 아주 잘 어울리는 맛을 낸다. 독일놈들도 족발 먹을 줄 아는구나~

겉은 바삭바삭, 속은 쫀득쫀득하게 잘 익은 학센. 가격은 좀 세지만 3~4인 안주로 한 접시면 충분해 보였다.

소스 역시 깊고 진한 맛. 학센조각을 푹 담궈 찍어 먹으면 굉장히 고급스런 맛이 난다. 개인적으론 패밀리 레스토랑의 음식들보다 한 수 위로 느껴졌다.

아직 맥주라 하면 벌컥벌컥~이란 단어가 연상이 되는 나이지만 크롬바커의 맥주들과 음식을 맛보고는 꽤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맥주 역시 하나의 독립된 식문화의 한 분야로 깊게 파고 들어볼 가치가 충분한 세계라는 것.
맛으로 맥주를 마시는 것도 꽤나 괜찮은 취미가 될 것 같은데 가격만 좀 더 친숙해진다면 즐기는 이들도 늘어나지 않을까.
Posted by shark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