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하고, 6호선 마포구청역 인근에 돈까스 하나로 유명세를 얻고 있다는 집이 있어 찾아가보기로 했다. 가게 이름은 '정광수의 돈까스 가게'. 경양식집 스타일의 돈까스를 내놓는 집인데 일단 주인장이 자기 이름을 간판에 걸어 놓았으니 한 번 믿어보고 싶었다.

가게 위치는 설명하기 좀 애매한데, 요즘 한창 잘 나가는 영화 '추격자'의 무대가 되고 있는 마포구 망원동에 있다고 일단 얘기할 수 있으며, 골목골목 깊숙한 곳에 있으므로 그냥 6호선 마포구청역 5번출구로 나간 뒤 망원초등학교를 찾을 것을 권장한다. 정광수 돈까스는 망원초등학교 정문 앞에 조그마하게 자리하고 있다.

가게 모습은 이렇다. 좁은 골목길에 작게 있는 관계로 정말 아담하게 생겨서 도저히 안에 들어가 식사를 할 수 있을지 조차 확실치 않아 보일 정도다. 실제로 들어가 보면 지상층에는 주방이 있고 계단을 따라 지하층으로 내려가면 4인 테이블 2개 2인 테이블 2개가 있는 아담한 홀이 있다. 넓진 않지만 무리하게 식탁을 줄이진 않아 앉아 있으면 크게 불편함을 느끼진 않게 된다.

느긋하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실제로도 천천히 나옴) 책들도 비치해 놓았다. 집에서 가져왔을테지만 장르가 좀 다양하다.

삐딱하게 걸려 있는 시계. 무식해서 그런지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눈길 한 번 더 끄는 정도?

화이트보드와 프로젝터. 월드컵 축구를 하면 틀지는 모르겠지만 협소한 관계로 앉은 사람 얼굴로 화면이 내보내어질 것 같다. 프로젝터 아래에는 낚시줄이 매어져 있어 당기면 위층 주방에서 종이 울리게 되어 있다. 요즘처럼 RF 방식의 무선호출기가 대중화된 시대에 어딘지 정겨운 모습이다.

쥔장이 저렇게 MSG와 트랜스지방을 쓰지 않을 것을 서약을 해 놓았으니 신뢰가 간다. 돈까스는 김밥천국 따위 분식집에서 간단히 만들려면 얼마든지 간단히 만들 수 있지만 제대로 만드려면 이만저만 손이 가는 음식이 아니기에 이런 주인장의 다짐은 음식을 믿고 먹을 수 있게 만든다.
참고 : 김밥천국식 돈까스 조리방법 - 찌꺼기 돼지고기와 닭머리 등등을 분쇄하여 만든 냉동돈까스를 대량으로 납품받아 며칠은 족히 된 쇼트닝유 튀김솥에 잠시 넣었다 빼낸 뒤, 말통으로 공급받는 소스를 데워 끼얹고 단무지 몇조각과 양배추 정도 추가하여 중국산 찐쌀을 섞어 만든 밥 한 주걱과 함께 접시에 담아 내놓음. 조리시간 5분 내외.

식사도구는 사람 수에 맞춰서 컵에 담아 내온다. 스푼은 2개씩 나이프와 포크 1개씩이 기본 수량. 모두 깨끗하게 닦여져 있다. (대단히 기본적인 것인데도 설겆이가 제대로 안된 식당이 잘 된 식당보다 더 많다는 건 밥먹으러 가면서 얼마나 기분 잡치는 일인가.)

제일 먼저 나온 스프. 쌀포대 크기 포장의 오뚜기 스프를 쓰는 게 아니라 밀가루를 직접 볶아서 갈은 양파를 추가해 만든 스프다(음식 블로그에서 흔히 쓰는 표현으로 수제스프). 밀가루가 완전히 개어지지 않고 몽우리가 좀 져 있긴 했지만 정성이 들어갔다는 사실 하나로 맛나게 먹을 수 있는 스프였다. 합격!

각종 소스류, 스테이크 소스와 핫소스도 단가가 비싼 편에 속하는 제품을 구입해 비치해 두었다. 기타 캐첩과 후추, 소금, 레몬즙 등이 비치되어 있어 필요시 가미해 먹을 수 있게 배려해 놓았고 물티슈도 비치해 놓고 있다.

드디어 돈까스 등장. 등심으로 한 쪽 안심으로 한 쪽, 총 두 쪽의 돈까스로 각기 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비엔나 소시지는 파는 걸 쓸테고(어쩔 수 없겠지만), 감자튀김은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한다.

가만 보니 밥도 대단히 정성껏 만들어서 한 톨 한 톨 고들고들한 게 일품이었다. 이만하면 밥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

아삭아삭한 양배추 샐러드에는 파인애플과 딸기가 한 조각씩 있고 단무지와 오이피클도 함께 나온다.

분쇄육 돈까스가 아닌 돼지고기의 육질이 살아 있는 살코기 돈까스. 깨끗한 기름으로 튀겨서 잡스러운 냄새도 안나고 직접 만든 소스와 함께 푸짐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식사를 마친 뒤 나오는 후식은 팝콘과 아메리칸 스타일 원두커피. 팝콘도 갓 튀겨서 따끈하고 옅은 커피는 돈까스의 기름기와 소스의 진한 맛을 정리하는 데 그만이었다.
이렇게 풀코스(?) 경양식 돈까스를 즐기고 지불한 금액은 1인분당 5,000원. 정말 재료비만 해도 빠듯할텐데 그걸로 인건비와 임대료 등은 어떻게 충당할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정성과 함께 제대로 음식을 내주는 집은 오래오래 가야 할텐데 말이다.
정광수의 돈까스 가게는 대단히 특별한 맛이라던가 화려함 같은 것은 없지만 정직하고 솔직한 맛으로 손님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흔치 않은 음식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몇 천원 더 지불할 용의가 충분히 있으니 이 맛과 정신을 오랫동안 이어가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했다. 이 집 돈까스를 먹기 며칠 전에는 용평리조트에서 1인분에 8,000원 하는 단체급식 돈까스를 먹었었는데 솔직히 정광수 돈까스가 상대적으로는 100배 더 나았고 절대적으로도 5배는 더 낫게 느껴졌다.
돈까스가 강하게 땡기는 날, 성북동 금왕돈까스처럼 양아치화 되어가는 기사식당스러운 돈까스는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데이트 코스로도 충분히 가볼만한 곳이라고 생각된다.
Posted by shark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