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드라마 뭐 괜찮은 거 없나 하고 관련 게시판을 기웃거리다가 사람들이 ‘세중사’가 그렇게 재밌다고 하는 글을 많이 봤다. 세중사? 난 처음엔 그게 제목인줄 알고 “육군 중사 세 명이 나오는 얘긴가? 그럼 전쟁드라마인가보네? 감동적이라고? 싸움터에서 죽는 얘긴가? 근데 일본 자위대에 중사라는 계급이 있었나?” 등등의 의문이 들곤 했다.
헌데 어떤 글에서 ‘세 중 사’라고 띄어쓰기를 해놓은 표기를 보고 그제서야 아,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줄임말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하긴 아무리 생각해봐도 육군 중사 세 명만 나와서는 도저히 감동적인 얘기가 나오기 힘들 것이다.

여튼 그렇게 재밌다는 세중사를 보게 됐다. 참고로 동명의 원작소설이 있고 이걸 드라마로 먼저 만들고 영화로도 나왔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차태현, 송혜교 주연의 영화 ‘파랑주의보’로 각색해 만든 바 있다.
‘백야행’을 먼저 봐서 그런지 너무나 순수하고 착하게만 나오는 주인공 야마다 타카유키와 아야세 하루카가 좀 낯설어 보였다. 드라마의 템포도 느린 편이고 장면장면 여백이 많은 드라마였다. (참고로 세중사의 두 주인공과 제작진들이 다시 뭉쳐 만든 작품이 백야행)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일본의 시골 어촌마을의 평범한 고등학생 마츠모토 사쿠타로는 비오는 날 사망한 학교 선생님을 위한 추모문을 낭독하는 같은 반 여학생 히로세 아키에게 눈길을 뺐기게 된다. 이런저런 잔잔한 과정을 거치면서 둘은 사귀게 되는데, 소니의 워크맨으로 그날그날 서로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녹음하고 신발장에 넣는 통신방법으로 첫사랑의 소중함을 가꿔나간다.(시간적 배경은 1986년이다.)

그렇게 잘 사귀다가 아키는 백혈병에 걸려 죽는다. 끝.
큰 줄거리는 대충 이렇지만 그 중간중간에 나오는 사소한 에피소드들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아주 단조롭진 않다. 또 주변인물들이 그냥 쓸데없이 시간만 때우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들을 하고 서정적인 장면들과 생각할 여지가 많은 잔잔한 대사들이 마음속에 흰 눈처럼 소복소복 쌓여온다.
좀 지겹다 싶을 정도로 많이 보아왔던 설정이고 나중에 만들어진 백야행이 워낙 인상적이었던 관계로 그 두 주인공이 이렇듯 해맑게 나온다는 게 조금 낯설긴 했지만 참 열심히 만든 작품이고 기억에 남을 드라마였던 것 같다.
내가 죽으면 그 사람의 뼈와 내 뼈를 같이 섞어서 뿌려줬으면 해
그렇게 하면 저 세상에서 그 사람과 같이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세상이라는 건 안아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 팔 안이 너무나도 따뜻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을 잃는 건
그래서 힘든 거야
해보지 않고 실패하는 것보다
해보고 실패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어떤 인생도
결국은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되는 거 같다는 생각 안 들어?

조금 전에 내 플러스 분 아키한테 넘겼어
나... 뭐 그다지 마이너스라도 상관없고
아키가 나보다 이루고 싶은 꿈 같은 것도 더 많은 것 같고

사쿠짱
나말야
깨달았어
행복이란 건 참 단순한 거야
사쿠짱이 존재하기 때문에
내가 존재한다는 거지?
분명히 그런 하루 하루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어제처럼 사쿠짱과 계속
손을 잡으면서 살 수 있었으면 해
내가 사쿠짱의 손을 끌어당기고
사쿠짱이 우리 아이의 손을 잡고
그런 식으로
걸어갈 수 있었으면 해

결국 인생이라는 게
하루하루가 쌓여서 만들어지는 거니까
그러니까
지금 둘이 할 수 있을 것에
최선을 다하자란 생각이 들어서 말야

따뜻함도 느낄 수 없고
무게도 느낄 수 없는
불면 날아갈 듯한 새하얀 가루
그게 아키였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아키와 함께 재가 된 것은 내 마음이었다
슬퍼서가 아니다
꿈에서 현실로 돌아올 때
넘어야만 하는 균열이 존재해
난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서
그곳을 넘을 수 없다

멀어져가는 아키를
나는 이제 잡을 수 없다
앞으로도 살아가는 한
너와 난 멀어지기만 하겠지
하지만 난 멈추지 않고 뛸 거야
멈추지 않고 뛰는 우리들의 발자취는
네가 존재했다는 증거니까

Posted by sharky
